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딕 체니 (문단 편집) === [[미국 부통령]] === [[1999년]] [[조지 W. 부시]]가 [[공화당(미국)|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자 부시는 [[러닝메이트]] 추천을 맡고있던 체니에게 오히려 부통령 직을 제의했다. 딕은 처음부터 부통령 후보 자리를 거절했다. 아내 린 체니도 "부통령은 그냥 얼굴마담 뒷방 늙은이나 하는 것"이라며 결사 반대했고, 결정적으로 딕 체니는 이미 '''[[1998년]]부터 [[협심증]]으로 인한 [[심장마비]]가 자주 오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조지 W. 부시]]가 무려 '''14번'''이나 접촉한 끝에 "외교와 국방 분야에 관한 권한을 부통령한테 위임한다고 약속한다"는 조건 하에 러닝메이트직을 수락했으며[* 부시의 러닝메이트 후보군으로는 [[존 댄포스]] 前 미주리 연방상원의원, [[톰 리지]]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조지 퍼타키]] 뉴욕 주지사, [[프레드 톰슨]] 테네시 연방상원의원 등이 있었다.] 그리고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와의 피 말리는 초접전 끝에 조지 W. 부시가 당선됨에 따라 체니도 부통령이 됐다. 그런데, 사실 체니가 위임해 달라고 했던 권한들은 미국 대통령 권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라 대한민국 같은 국가에 비하면 대통령의 내치 권한이 의외로 약하다. 물론 주요 부처의 장차관이나 대법원 판사 등 굵직한 인사권, 거부권, [[행정명령#s-2|행정명령]], 입법 권고 등 굉장히 강력한 권한을 지녔지만, 각 주가 독립적인 3권을 갖고 있는 나라라 내정 관련된 부분에서 연방정부의 역할은 크지 않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은 미국 헌법에 따라 세계 최강의 군대인 [[미합중국 국군|미군]]의 [[통수권|총지휘권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가 전체의 수장으로서 주지사들은 가질 수 없는 외교권을 갖고 있다. 고로 세계 최강국이라는 위상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지 W. 부시는 이 두 가지 힘을 둘 다 체니한테 넘겼다.''' 부시가 얼굴마담이고 체니가 실세란 얘기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국의 외교권과 국방 분야 권한을 손에 쥔 사람이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미국의 실세다. 물론 당연히 진짜 체니가 군 통수권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명목상 부시가 사령관이라도 그 정책이 다 체니한테서 나온 것이니 운전 핸들은 부시가 잡았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는 방향은 체니가 정했던 것이다. 체니는 [[도널드 럼즈펠드]]처럼 아버지 부시 시절에도 일했으며 [[걸프 전쟁]] 당시 [[국방장관]]이었다. 그 경력 덕분인지 43대 [[아들 부시]] 대에서는 [[미국 부통령|부통령]]까지 지내게 됐다. 이 사람은 [[1941년]] [[1월 30일]]생[* [[이명박]] 전 대통령과 나이가 같다. 다만 이명박은 12월생이라 거의 1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과는 생일이 같다.], 아들 부시는 [[1946년]]생으로 나이 차는 그다지 나지 않는다.[* 참고로 아버지 부시는 1924년생.]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선 '''[[네오콘]] 최종보스'''로 군림했다. 아들 부시나 럼즈펠드는 이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대단한 인물이었다. 아들 부시 대통령 밑에서 사실상 부시 행정부 내 최고 권력자가 되었으며, 그가 내놓은 이야기들은 전부 부시가 정책화시켰기 때문에 사실상 체니의 말이 곧 법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대통령인 아들 부시는 [[바지사장|얼굴마담]]이고 진짜 대통령이 딕 체니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례가 없는 권력을 가진 부통령이었다. 그가 이렇게 강한 발언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역시 군 관련 경력[* 하지만 아버지 부시 정권에서 국방장관이 되기 전까지의 군 관련 경력은 아예 없다. 제복군인으로써의 경력 없이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 중 하나였다. 월남전 당시 미국에서 징병제를 시행했었고 당시 체니는 징병 연령이었다. 그는 대학 재학과 결혼을 이유로 징병을 연기하다가 징병제가 폐지되어서 군 입대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병역 기피 의혹을 받았고 이런 상태에서 강경 정책을 펼친 것이 있어서 [[치킨 호크]] 중 하나라는 소리도 나왔다.]이 있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으며, 부시 일가와 친했고 아들 부시가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하튼 이렇게 권력을 쥐자 미국 행정부에 자기와 코드가 맞는 네오콘들을 주요 공직에 앉혔다. 그 때문에 아버지 부시와 그들의 보좌진들은 체니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솔직히 체니와 네오콘들은 아버지 부시나 그를 보좌한 인물들에 비하면 '''상당히 무능하다.''' 당장 아버지 부시도 CIA 국장 시절 CIA의 위상을 지금처럼 무섭게 만들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들 부시 시절 [[북한]], [[이란]], [[이라크]] 등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압박적인 정책을 취하게 되고 다른 아랍권에 대한 강경 정책이 펼쳐지게 된 것도 이 양반의 공로. 다만 럼즈펠드와 부시의 대활약으로 인해 그 위험성이 우리나라에는 덜 알려진 편이다. 그러나 이 양반도 [[이라크전]]이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벌려놓고 '''정작 전쟁 진행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하나도 몰랐다.''' 게다가 군납기업인 핼리버튼 사장 출신이라는 점[* [[민간군사기업]]중 군납기업으로, 문제의 만행은 항목 참조.] 때문에 부시 행정부가 벌이고 있는 전쟁들이 다 거대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게 만들었다. 이 당시 체니와 커넥션이 있다는 기업들은 이득을 좀 많이 봤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본인은 이 일에 전혀 관련이 없다]]는 드립을 쳐댔고 거짓임이 탄로나고도 본인은 꾸준히 부인하고 있다. [[http://shindonga.donga.com/Library/3/04/13/103235/1|출처]] 덕분에 이라크전을 벌이고 있던 부시 행정부의 이미지는 더더욱 악화되었다. 당시 이라크 침공을 위한 계획을 진행하던 도중 일화로는 부시 대통령과 고위 참모진들 및 군 수뇌부들이 모여서 작전 계획 및 상황 등을 보고 받던 상황이었는데 럼즈펠드는 '''못 알아듣고는 계속 보고자에게 큰 소리로 말하라고 하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은 '''페퍼민트맛 사탕을 짭짭대며, 웃긴 건 옆에 있던 참모진들에게도 그거 먹을 거냐고 물어본 뒤 가져갔으며''' 딕 체니는 '''졸았다.''' 참으로 잘 돌아갔던 부시 행정부의 일상의 단면이다(...) [[리크 게이트]]에 그가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영향력이 약해졌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약해진 것이지 다른 [[네오콘]]들이 권력을 잃거나 사임할 때도 이 양반은 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 행정부 내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라크 침공]]의 전황 막장화와 재임 초부터 관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경하게 막 나가는 행보 등으로 그나마 아직까지는 최소한의 정신줄을 잡고 있던 부시(...)[* 믿기 힘들겠지만, 부시는 이들 중에선 상식적인 인물이었으며 행정부 내에서 자신이 최고 권력자임을 분명히 했다. 부시 행정부 초기의 막나가는 강경책은 '''네오콘들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밀어붙인 것을 부시가 그나마 순화시켜서 정책을 편 것이다.''']도 도저히 체니의 삽질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게 되자 체니의 네오콘 친구들을 고위직에서 대거 몰아내고 상식적이었던 인물들을 앉히면서 체니의 장밋빛 시절에 마침표를 찍어버렸다. 덕분에 부시 행정부 2기는 그나마 안정적으로 바뀌어갔다. 결국 부시 임기 말기 [[데니스 쿠시니치]]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7&aid=0000056326|탄핵안까지 내놓는]] 등 엄청나게 비난받으며 역사상 가장 많이 욕 먹은 부통령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에서조차 지지를 받지 못하고 찬성 162 : 반대 251로 부결되었는데, 공화당은 1시간이나 반대 토론을 제안하면서(물론 민주당을 까려는 의도가 있었다지만) 체니의 이미지를 더욱 실추시키는 촌극을 벌였다. 이 덕분에 대선 당시 부시 대통령과 함께 공화당 기피대상 1호였다. 흑인 최초 합참의장이자 부시 1기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이 체니와 네오콘들에게 하도 시달려서 공화당 출신이면서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 정도였다.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에 '''[[러시아]]와 [[제3차 세계대전|전쟁]]'''을 일으키자고 주장한 바 있다. 이때는 부시 행정부가 중동에서 일으킨 전쟁의 후유증 때문에 아주 전쟁이라면 진절머리를 내던 시절이니, '''미국 전체가 그에게 욕했다.'''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2/20/2010022000582.html|관련기사]] 당연히 다른 사람은 물론 조지 W. 부시까지도 말렸다. 핵심 동맹국도 아니고, 게다가 미국에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부통령 시절 임시 대통령을 맡은 적이 있는데, 부시가 프레첼을 먹다가 목에 걸려 내시경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한 번 더 맡은 적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